팔공산 소개

팔공산 소개

팔공산 소개

동화사

동화사

팔공총림 동화사는

1,5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불교의 대표 총림으로서, 조계종 종정예하이신 진제 법원 대종사께서 주석하시며 선원, 율원, 강원에 100여 명의 대중이 상주하며 여법히 정진하는 청정 수행도량입니다.

세계최대의 석불인 약사여래대불을 비롯한 수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동화사는 동아시아 10대 관광명소로 지정되어 연중 내내 수백만 명의 내외국인들이 참배하는 동양의 대표 성지입니다.

또한 국내 유일의 선(禪) 체험관인 불교문화관에는 오색영롱한 부처님 진신사리 7과가 모셔져 있으며, 법화경 7만자를 석각과 판각의 황금경판으로 조성하는 대작불사가 진행중입니다.

약사여래대불 24시간 개방으로 365일 꺼지지 않는 수행기도 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는 동화사는 대구시민들의 정신적인 쉼터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갓바위

갓바위

갓바위는

팔공산의 남쪽 봉우리 관봉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불 좌상으로서, 전체 높이는 4m에 이른다. 관봉이 곧 우리말로 '갓바위'이므로 흔히 '갓바위부처님'이라고 부릅니다. 

관봉은 인봉.노적봉과 함께 팔공산의 대표적 봉우리로서 해발 850m의 고봉입니다. 그래서 이 곳에서는 팔공산의 서남쪽이 모두 두루 조망됩니다.

이 갓바위 부처님은 절에 전하는 바로는 원광법사의 수제자인 의현대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638년에 조성한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전체적 양식으로 보아 8~9세기 작품으로 보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정설입니다. 현재 보물 제 43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현재 갓바위 부처님 앞에는 약 80평 가량 널찍하게 터가 닦였고, 바닥에 돌이 깔리고 주위에는 철제 난간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또 그와 함께 선본사에서 올라오는 길이 좀 더 넓혀지고 계단과 철제 난간이 많이 보완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비해 한결 기도드리기 편하게 되었습니다.

부인사

부인사

부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로, 부인사 또는 부인사라고도 합니다.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39개의 부속암자를 관장하였고 2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며 수도하였다고 합니다. 고려 현종 때부터 문종 때까지 도감을 설치하고 고려 초조대장경을 판각한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판각은 몽골의 칩입으로 대부분 소실되었고, 현존하는 1,715판도 일본 교토 난젠사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몽골 칩입 이후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다시 불탔습니다.

지금 건물은 1930년대 초 비구니 허상득이 원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400m 거리에 있는 암자터에 중창한 것입니다. 당우에는 석가모니불상과 아미타불상, 관세음보살상을 안치한 대웅전과 선덕묘, 2동의 요사채가 있습니다.

이 밖에도 주춧돌, 화려한 문양의 장대석을 볼 수 있습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기적인 승가시가 섰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1930년대 중건된 선덕묘에서는 지금도 음력 3월 보름, 동네 사람들과 승려들이 함께 선덕제를 지냅니다.

파계사

파계사

파계사는

804년(애장왕 5) 심지(心地)가 창건하고, 1605년(선조 38) 계관(戒寬)이 중창하였으며, 1695년(숙종 21) 현응(玄應)이 삼창하였다. 이 절에는 영조(英祖)의 출생과 관계되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숙종의 부탁을 받은 현응은 농산(聾山)과 함께 백일기도를 하였고, 기도가 끝나는 날 농산이 숙빈(淑嬪) 최씨에게 현몽하였으며, 이렇게 태어난 아들이 후일의 영조였다는 것이다. 숙종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파계사 주변 40리 이내의 조세(租稅)를 받아 쓰라고 하였으나 현응은 이를 거절하고 선대의 위패를 모시기를 청하였다. 이는 지방 유림(儒林)의 행패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1979년 관음보살상을 개금할 때 불상에서 나온 영조의 어의(御衣)는 이 설화의 신빙성을 더해 주는 것이었다. 현존 당우로 2층누각인 진동루(鎭洞樓), 법당인 원통전(圓通殿), 적묵당(寂默堂) 등이 있고, 부속암자로 현니암(玄尼庵) ·성전암(聖殿庵) ·금당암(金堂庵) 등이 있는데, 성전암은 경북 3대 도량 중의 하나이다. 문화재로 보물 제1214호 파계사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가 있다.

제2석굴암

제2석굴암

제2석굴암은

고구려에서 전해진 신라불교가 팔공산 자락에서 꽃피워지고 신라의 경주로 전해져 결실을 맺었다. 

팔공산 비로봉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는 이곳에서 거대한 바위산 졀벽을 이루었고, 이 절벽허리 20m 높이에 남으로 향한 둥근 천연동굴에 삼존불상을 봉안하였으니 삼존석굴이라 한다. 

이 삼존 석굴은 제 2석굴암이라는 이름 때문에 경주 석굴암을 모방한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실제로는 경주 석굴암보다 약 100년정도 먼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규모나 불상의 형태등은 경주의 석굴암에 미치지 못하지만, 거대한 바위벽의 구멍에 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는 모습은 신기하기 이를데 없다. 

경상북도 군위군 팔공산 절벽의 자연동굴에 만들어진 통일신라 초기의 석굴사원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경주 석굴암 석굴(국보 제24호)보다 연대가 앞선다. 이 석굴에는 700년경에 만들어진 삼존석불이 모셔져 있는데, 본존불은 2.18m, 왼쪽 보살상은 1.8m, 오른쪽 보살상은 1.92m이다. 가운데 본존불은 사각형의 대좌(臺座) 위에 양 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위로 향한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제천단

제천단

제천단은

팔공산 정상인 천왕봉(비로봉)에 있다. 돌을 쌓아 원형으로 만든 이 단이 진짜 제천단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태백산 천제단처럼 예부터 전해지는 명확한 유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팔공산에서 제를 지냈다는 기록은 여러 문헌에 남아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시대에는 삼산오악(三山五岳)에서 제를 지냈는데 삼산에서는 대사(大祀)를 지냈고 팔공산을 포함한 오악에서는 중사(中祀)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문신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는 무신정권 때 경주, 청도, 대구 등에서 일어난 민란을 토벌하기 위해 팔공산 신(神)인 공산대왕에게 올렸던 세번의 제문이 남아 있으며,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수령으로 하여금 공산에서 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숙종 12년(1686) 달성군수로 재직하던 김태일(1637~1702)이 ‘팔공산기우제(八公山祈雨祭)’를 지어 팔공산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 등 신라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팔공산에서 천제(天祭)를 지냈던 사실을 여러 문헌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